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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사회학

기능주의와 갈등주의 이론의 구체적 접근(우리나라 교육현실을 바탕으로)

교육과 사회의 관계를 바라보는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학교교육과 사회의 관계를 바라보는 두 입장인 기능주의와 갈등주의 이론 중 어느 것이 맞고 틀리 다고 이야기 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실제 교육 장면을 살펴보았을 때 두 이론에서 주장하는 내용이 모두 나타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두 이론에서 주장하는 내용을 활용하여 학교교육이 어떻게 각 개인과 사회에 영향을 미치는지 날카롭게 파악하고 학교교육이 올바른 방향으로 제 기능을 다 하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 여기에서는 기능주의와 갈등주의의 하위 이론을 따로 생각하지 않고 종합하여 다루도록 하겠으며 앞에서 이미 여러 학자들의 이론을 바탕으로 기능주의와 갈등주의의 학문적 이론 측면을 살펴보았으므로 이제는 현재 우리나라의 교육에 비추어 기능주의와 갈등주의 이론의 실제적 적용 측면을 중심으로 생각해 보겠다.

 

기능주의는 갈등주의보다 우선 주류를 이뤘던 이론으로 우리가 흔히 별 의심 없이 학교교육을 바라보던 시각과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학교교육은 누구에게나 필요한 것으로 인간이 갖추어야 할 지식과 기능을 습득하도록 도와주는 효과적인 교육제도라고 본다. 기능주의 이론은 학생은 개인별로 평등하지 못한 가정배경을 갖고 있지만 학교교육을 통해서 자신의 능력에 따라 가정배경 차이를 극복하고 원하는 사회적 지위를 획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학교교육은 불평등한 사회를 개인 능력에 따른 평등한 사회로 극복시킬 수 있는 매우 정의로운 기관이라는 것이다. 학교에서 다루는 교과내용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보편적으로 가치 있는 내용이며, 또 각자 미래에 몸담게 될 직업에 필요한 특수 기능도 학교교육을 통해 얻을 수 있다고 본다. 학교교육은 합당한 평가를 통해 개인의 능력에 맞게 사회의 적재적소에 개인을 선발하여 배치시키는 기능을 하므로 학교교육은 개인적인 측면에서나 사회적인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특히 사회적인 측면에서 학교교육은 개인을 올바르게 사회화시키므로 사회의 안정과 질서유지에 기여하게 된다.

 

이런 기능주의 이론은 학교교육의 이상적인 모습으로 보인다. 학교교육이 현재처럼 팽창하게 된 이유도, 우리나라 사람들의 교육열이 지나치리만큼 높은 이유도 이러한 학교교육의 긍정적인 아니 이상적인 모습을 믿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학교교육은 물론 기능주의에서 주장하는 기능을 분명히 해내고 있다. 가정적인 배경이 사회적으로 높지 않더라도 학생 개인이 능력이 있어서 높은 학업 성취를 보인다면 그 학생은 사회에서 높은 지위를 차지할 확률이 훨씬 높아지게 된다. 따라서 이런 경우 학교교육을 통해 능력별 평등 사회를 이루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도 볼 수 있겠다. 그리고 기능주의가 강조한 학교교육의 사회화 기능 또한 실제로 의미 있게 작용하는 것으로 학교교육을 통해 사회에 적응할 수 있는 각종 지식과 기능을 배울 수 있다. 그리고 학교교육은 객관적인 평가방법을 통하여 학생들을 평가하게 되고 그 결과에 따라 학생들은 각기 다른 직업이나 사회적 지위를 얻게 된다. 물론 교육 정도에 따라 완벽하게 사회적 지위나 직업을 얻는 것은 아니지만 교육과 사회경제적 지위 획득은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분명히 있다.

 

기능주의에서 주장하는 학교 교과 내용의 절대적 가치 또한 어느 정도 그렇다고 볼 수 있다. 갈등주의에서는 학교교육에서 다뤄지는 교과내용이 지배계급의 문화라고 주장하고 있긴 하나 지배계급의 문화라고 무조건 그 내용이 보편적인 가치가 없다고 보기는 힘들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과학이라는 교과를 생각했을 때 물론 지배계급이 피지배계급에 비해 여러 상황적 조건이 좋으므로 과학의 각종 이론에 대해 학습할 기회가 많았을 것이고 따라서 많은 과학적 지식을 지니고 있을 것이다. 그럼 지배계급이 습득한 지식이라서 과학이라는 학문 자체의 내용이 절대적인 가치가 없다고 보아야 하는 것일까? 그건 충분한 설명이 되지 못한다. 지배계급이 많이 학습한 교과 내용이기에 그 내용은 지배계급의 사상을 담고 있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다. 다만 이렇게는 설명이 가능할 것이다. 지배계급은 이미 많은 학습의 기회를 통해 양질의 지식을 습득하였고 그 지배계급의 자녀들은 부모의 영향으로 가정에서 교육적으로 유의미한 조력을 받을 수 있다. 따라서 피지배계급에 비해 지배계급의 자녀는 학교교육 장면에서 더 유리한 위치에서 시작할 수 있으며 학습하는 과정에서도 그러하다고 볼 수 있겠다. 갈등주의에서 학교교육에서 사용하는 언어를 가지고 지배계급이 피지배계급에게 자신들의 언어문화를 학교교육에서 사용하여 자신들의 지배구조를 영속화시키려고 한다고 주장하기도 하는데 이 또한 위와 같은 맥락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객관적으로 사용언어의 다양화는 의사소통을 정확하고 논리적으로 만드는 데 필요하다. 지배계층이 더 구조화된 다양한 단어를 사용하여 의사소통 한다고 학교교육에서는 그런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 불평등한 것이라고는 볼 수 없다. 학교교육은 지적으로 높은 차원에 학생들을 이르게 할 목적을 가지고 있으며 물론 지배계층의 자녀는 가정이라는 문화 속에서 좋은 교육적 지원을 받지만 그렇다고 해서 평등이라는 이유로 학교교육에서 수준 낮은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는 것은 받아들이기 힘든 주장이다. 물론 갈등주의에서 말하는 것처럼 보편적으로 우리가 수준이 높다고 생각하는 문화 가운데에는 그 정당성이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없는 성질의 것도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음악과 같은 예술적인 성격의 교과들일 것이다. 하위계급을 대표하는 흑인층에게서 발달했던 힙합 음악 문화와 상류층을 대표하는 백인층에게서 주류로 인식되어 온 클래식 음악문화 중 학교교육에서 가치 있다고 다뤄지는 것은 클래식 음악이다. 따라서 이런 경우 백인 상류층 가정에서 자란 학생은 흑인 가정의 학생에 비해 훨씬 쉽게 학습할 수 있으며 같은 지적인 능력을 가진 경우라도 흑인 학생에 비해 높은 학업 성취를 보이고 나아가 높은 사회적 지위를 얻기 용이해질 것이다. 힙합 음악과 클래식 음악 중 어느 것이 더 우위인가를 평가한다는 것은 사실 불가능해 보인다. 하지만 학교교육에서는 클래식 음악만을 당연시하며 다루고 힙합 음악은 암묵적인 가운데 저급한 음악으로 여겨지게 된다. 이런 경우에는 갈등주의자들이 주장했던 지배계급의 문화를 학교교육에서 정당화시키며 가치 있는 것으로 다루게 된다는 논리가 설득력을 갖게 된다. 즉,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교과 내용적인 측면에서 봤을 때 기능주의에서 주장하는 면과 갈등주의에서 주장하는 것이 모두 나타난다는 것이다. 교과의 특성상 그 가치가 객관적으로 판단될 수 있는 것도 있으며 반대로 주관적인 가치 판단으로 다룰 수밖에 없는 성격의 것도 있다. 따라서 이런 경우 무조건 기존의 기득권 세력인 지배계층의 문화만을 학교교육에서 다룰 것이 아니라 문화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다양한 문화를 교과안으로 흡수하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객관적으로 가치 있게 여겨지는 내용의 경우 상대적으로 유리한 환경을 부여 받은 지배계층과 평등한 능력별 경쟁이 가능하도록 피지배계층의 자녀에게 특별한 보충 교육이나 선수학습을 제공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할 것이다.

 

기능주의에서 주장하는 교육의 선발 및 배치의 기능 또한 교과 내용에서처럼 갈등주의에서 주장하는 이론도 함께 생각해 봐야만 정확한 파악이 가능하다. 앞서 말했듯이 교육은 기능주의에서 주장한 바대로 개인의 능력을 객관적으로 평가하여 적재적소에 개인을 배치하여 사회의 유지에 기여한다. 하지만 그 평가가 기능주의에서 주장한대로 매우 이상적으로 평등하다고는 볼 수 없다. 개인에게 주어진 가정의 사회적 지위가 일단 불평등하므로 그 기회가 평등하다고는 보기 힘들다. 우리나라 현실에서 바라봤을 때는 갈등주의에서 내세운 그 교과내용을 받아들이는 데에 가정배경에 미치는 영향보다는 사교육의 측면을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물론 우리나라도 공교육제도가 확고히 자리 잡고 있긴 하지만 현실적으로 공교육만으로 높은 학업성취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은 그다지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일단 입시제도에서 다뤄지는 내용이 학교교육에서 다루는 교과내용의 수준을 넘어선 내용이며, 내용이 학교교육에서 다루는 내용의 범위 안에 들어있다고 할지라도 훨씬 많은 교육의 기회를 사교육을 통해 제공받은 학생과 그렇지 못한 학생의 간격은 벌어질 수밖에 없다고 보인다. 이렇듯 학교교육의 선발 및 배치 기능은 존재하긴 하나 그 구체적인 모습은 갈등주의에서 강조한 것처럼 지배계급에게 유리하다고 볼 수 있겠다. 이런 문제 또한 정부에서 제도적으로 사교육을 받을 형편이 못 되는 학생에게도 자신이 원하면 추가로 학습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주고 공교육이 제 기능을 다할 수 있도록 공교육의 경쟁력 강화에 힘쓰는 등 가정환경에 의한 교육 기회의 불평등 해소를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갈등주의에서는 학교교육이 피지배계층에게 기존의 불평등한 위계구조에 순응하게 하고 특히 경제활동에서 지배계층의 지휘 아래 복종하고 시간을 지키는 등 질서교육을 통해 잘 정비된 노동자를 길러낸다고 주장한다. 학교교육에서 교사와 학생의 관계가 나중에 사회에서 만나게 될 자본가와 노동자의 관계와 유사하다는 것이며 교사에게 복종하며 반항한 경우 혼나는 등의 평범한 학교생활 속에서 무조건적으로 복종하는 태도가 학습된다는 것이다. 물론 학교에서 학생과 교사가 대등한 관계라고는 볼 수 없다. 더욱이 우리나라처럼 유교적인 문화에서는 더욱 그러할 것이다, 그러나 스승과 제자라는 관계의 특이성이 바로 자본가와 노동자의 경제적인 관계에 그대로 전이된다고 보는 것은 다소 과장이 있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고도 볼 수 없는 문제이다. 이 문제는 가정을 놓고 보아도 마찬가지이다. 가정에서는 부모가 자녀보다 더 우위에 놓인 상태로 생활하게 되며 이는 불평등하다고 비판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부모는 일단 자녀보다 더 인생을 오래 산 삶의 스승이라 볼 수 있으며 항상 그렇다고는 볼 수 없으나 어쨌든 덜 자란 자녀보다는 여러 가지 면에서 올바른 판단을 하고 그 길로 자녀를 이끌 수 있는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그럼 이런 경우 가정도 사회의 불평등을 양산하는 곳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리고 지배계층의 가정은 부모와 자녀가 과연 대등한가? 지배계층이라고 자녀와 부모의 관계가 지배계층의 특성을 길러내기에 적합하게 피지배계층의 그것과 차별성이 있다고 보여지지는 않는다. 그리고 학교에서 스승과 제자의 관계는 지배계층의 자녀에게도 피지배계층의 자녀에게도 유사하게 주어진다. 따라서 갈등주의에서 주장하는 바는 다소 과장된 주장이라고 여겨진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전혀 그런 측면이 없다고 간과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학교나 가정이나 지나치게 위계적인 인간관계가 존재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관계가 복종적이고 잘못된 것이 있어도 그냥 순응해 버리도록 만드는 측면도 없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학교건 가정이건 학생과 교사 혹은 부모의 관계가 완전히 대등할 수 없더라도 합리적인 관계를 형성하여 대화나 타협을 통한 인간 대 인간의 바른 관계 형성을 추구하여야 할 것이며 설령 연장자이거나 더 높은 지위를 가진 사람을 대할 때에도 무조건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비판적이며 합리적으로 가치판단을 하며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학교나 가정의 분위기를 조성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사회변화의 원인에 대하여 생각해 보고자 한다. 기능주의에서는 사회는 기본적으로 안정을 추구하며 변동이 일어나도 서서히 일어나며 그 원인은 하나의 유기체적인 사회의 각 요소들 중 어떤 요소의 변화가 서로에게 상호작용을 하면서 서서히 변하는 것이라고 보았고 갈등주의에서는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의 피할 수 없는 대립적 관계에 의한 충돌로 인해 사회가 급진적으로 변화된다고 보았다. 사회변화의 원인 또한 기능주의적인 측면과 갈등주의에서 주장하는 측면이 모두 나타난다고 볼 수 있다. 사회에서는 하나로 규정짓기에는 무수히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으며 그 변화의 종류에 따라 대립에 의한 급진적인 변화도 있을 수 있으며 작은 변화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는 변화가 일어나기도 하고 하나의 장면에서 두 가지 변화의 모습이 서로 얽혀서 일어나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대략적으로 갈등주의와 기능주의에 대해 살펴보았는데 교육, 그리고 사회가 하나의 이론으로 규정짓기에는 무수한 변수를 지닌 대상이며 따라서 그 구체적인 상황이 매우 다양하고 가변적이므로 두 이론 중 어느 것이 현실과 맞아 떨어진다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어떻게 보면 기능주의는 학교교육에 대한 긍정적인 측면이며 갈등주의는 학교교육에 대한 부정적인 측면이라고 볼 수 있겠다. 대부분의 제도가 그러하듯이 학교제도 또한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이 공존할 수밖에 없다. 학교제도는 긍정적인 측면을 염두에 두고 사회적 합의를 통해 만든 제도겠지만 불공평함이 존재하는 사회 현실상 사회 안에 있는 학교제도 또한 이상적인 기능만을 하는 것이 아니라 부정적인 기능을 하기도 하는 것이다. 따라서 학교교육이 정상적인 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기능주의와 갈등주의 이론을 모두 고려해 보아야 할 것이다. 기능주의는 학교교육이 나아가야 할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는 것으로 의미가 있겠으며 갈등주의는 학교교육 현장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을 제시한다는 측면에서 그 의미가 있겠다. 이렇듯 두 이론 모두 교육과 사회의 관계를 인식하고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데에 나름대로 의미가 있으므로 이 두 이론과 그 하위이론들 그리고 현재까지 연구된 교육사회학의 여러 이론을 종합적으로 인식하고 이를 교육현장에 적용하여서 올바른 가치판단을 내려 학교교육이 제 기능을 다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